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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訓民正音解例 ]
制字解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하나의 음양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멎고 한 뒤가 음양이 된다. 무릇 어떤 생물이든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것은 음양을 두고 어디로 가랴? 그러므로 사람의 말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가 있건마는 생각건대 사람들이 살피지 않을 뿐이다. 이제 정음(正音)을 만든 것도 처음부터 지혜로써 경영하고 힘써 찾아 낸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소리에 따라서 그 이치를 다하였을 뿐이다.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닌즉 어찌 하늘과 땅과 더불어 그 운용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글학회에서 펴낸 '훈민정음 옮김과 해설'에서 인용)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

동양의 모든 학문과 철학의 기본은 음양오행론이다.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세계관으로서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은 원래 음양론과 오행론으로 독립되어 있었으나 대략 B.C. 4세기초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결합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어왔다.

음양론...

영혼과 물질의 기원을 분명히 구별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중국 고대인들에게 두드러지게 생겨난 것이 음양론인데, 그것은 일종의 자연철학이며 세계관이었다. 중국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우주간의 만물은 모두 형(形), 질(質), 기(氣)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기(氣)는 태일(太一)에서 생겨나와 발전하여 음과 양의 이원(二元)으로 갈라지게 된다. 따라서 우주 간의 만물이나 모든 현상, 예컨대 남녀·좌우·천지·명암 등과 같은 것들은 모두 음양의 이원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되었다. 음양의 이원은 만물과 모든 현상의 생성·변화·소멸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음양의 이원은 상대적임과 동시에 순환적이다. 그 이원이 병존하는 경우에는 상화(相和)하여 생성에 관계하고 있지만, 반대로 상반(相反)·상쟁(相爭)하는 경우에는 사멸(死滅)에 이르게 된다. 또 양(陽)인 봄과 여름에 이어 음(陰)인 가을과 겨울이 오는 것처럼 이원은 교대·순환하여 변화에 이르고 있다. 즉 양이 극에 이르면 그 순간에 음이 생겨 나는데 여름 한가운데에 이미 가을의 기운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또 음이 극에 이르면 양이 생겨나는데 한겨울에 이미 봄의 기운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것이 자연의 대원칙이다. 이러한 음양론이 오행론과 결부되어 음양오행론으로 여러 사상이나 종교뿐 아니라 한민족을 비롯한 동양인의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음양론은 주로 주역(周易)과 연관되어 있는데, 효(爻)와 괘(卦)에서 획선(劃線) ―은 양(陽)을, 절선(絶線) --은 음(陰)을 나타낸다. 팔괘(八卦) 중 건괘(乾卦)와 곤괘(坤卦)는 각각 로서 양과 음의 특별함을 상징하고 나머지 6괘는 음양의 효가 조합되어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음양 교역(交易)의 과정을 도획으로 상징화한 것으로 천지만물의 생성을 나타내고 있다.

오행론...

음양설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된 오행론은 음양설과 마찬가지로 중국 자연철학의 일종이며 세계관이었다. 오행이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5원소를 말한다. 이 5원소가 우주 사이를 유행·변전하여 만물을 생성한다는 것이 초기의 오행론이었다. 특히 이 5원소가 선택된 것은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되는 다섯가지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행론은 그 후 종교를 비롯한 많은 방면에 응용되기도 하였다. B.C. 3세기경 전국시대에는 오행론에 음양론을 결부시켜 여러 가지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이 되기도 하였다. 그것을 처음 설명한 사람은 제(齊)나라 추연(鄒衍)인데, 그에 의해서 음양오행사상이 체계적으로 성립되었다. 이른 바 오덕종시론(五德終始論)이 그것이다. 그는 종래부터 전해 내려오던 오행론을 종합, 정리하여 우주사이의 모든 변화는 오행의 덕성(德性), 즉 그 운행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이른 바 오행상승론(五德相勝論)을 제기하였다. 그에 의하면 오행의 상호관계는 "목(木)은 토(土)를 이기고, 금(金)은 목을 이기고, 화(火)는 금을 이기고, 수(水)는 화를 이기고, 토는 수를 이긴다."고 하는 순환, 즉 상승(相勝)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계절의 변화, 방위, 왕조의 흥망성쇠 등 모든 현상의 변화에 적용된다고 하였다. 이 사상은 한(漢)나라 때 더욱 발전하고 널리 퍼졌는데, 새롭게 오행상생론(五行相生論)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목은 화를 낳고, 화는 토를 낳고, 토는 금을 낳고, 금은 수를 낳고, 수는 목을 낳는다고 하여 오행상승론(五德相勝論)과 더불어 모든 현상들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이 되었다. 한나라 때 더욱 발전한 오행론은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해지는데, 계절·방위·색(色)·맛·음(音)·수(數)·신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을 오행에 배속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의 전래와 수용...

우리나라에 음양오행론이 들어온 것은 한족(漢族)과의 접촉에서 비롯되었다. 한사군(漢四郡)시대에 이미 음양오행의 사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사상의 구체적인 이해는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우선 고구려 고분에 그려져 있는 사신벽화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당시에 음양오행설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사신벽화에는 오행의 네 방위를 맡은 수호신으로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가 그려져 있어 중앙에 있는 망자(亡者)의 영혼이 영원불멸할 것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광개토대왕비문에도 음을 상징하는 구(龜)와 양을 상징하는 용(龍)이 보이며, 정치체제에서 문무양반(文武兩班)으로 나누고 오부오방제(五部五方制)로 나눈 것도 음양오행론의 영향이라 여겨진다. 도시를 설계함에 있어 중앙에 청사를 두고 4대문을 설치한 것도 음양오행론의 영향이라 보인다.
백제에서도 오경박사(五經博士)와 더불어 역학사(易學士)·역박사(曆博士) 등이 있었고, 무왕 때 관륵(觀勒)이 역본(曆本)과 천문지리서 등을 가지고 일본에 갔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백제에는 음양오행에 관한 서적들이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음양오행론을 가장 늦게 받아 들인 신라에서는 음양오행론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태종무열왕비에 나타나는 귀부(龜趺)와 비신(碑身)을 세운 모습, 경주 감은사지석(感恩寺址石)에 보이는 태극도형, 그리고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설화 중 상당부분이 음양오행설을 주제로 한 것이 예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성당(盛唐) 문화의 수입으로 전문지식계급에 의한 음양오행론의 이해도 더욱 깊어져서 외교문서의 제작, 의학, 법률 등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동경(銅鏡)이나 석등(石燈)에 쌍룡태극형의 문양이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의 구조원리와 이제마(李濟馬)의 사상(四象)의학에서 음양오행의 역리(易理)를 응용하였으며, 현대에 와서는 태극기(太極旗)에 그 원리가 도입되었다.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서경(書經)에서도 오행에 관한 부분이 언급되어 있다.

"오행에 관하여 첫째는 수(水)이고, 둘째는 화(火), 셋째는 목(木), 넷째는 금(金), 다섯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물체를 젖게 하고 아래로 스며들며, 화는 위로 타올라 가는 것이며, 목은 휘어지기도 하고 곧게 나가기도 하며, 금은 주형(鑄型)에 따르는 성질이 있고, 토는 씨앗을 뿌려 추수를 할  수 있게 하는 성질이 있다. 젖게 하고 방울져 떨어지는 것은 짠맛을 내며, 타거나 뜨거워지는 것은 쓴맛을 낸다. 곡면(曲面)이나 곧은 막대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맛을 내고, 주형에 따르며 이윽고 단단해지는 것은 매운맛을 내고, 키우고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은 단맛을 낸다." 이와 같은 오행의 개념은 단순히 다섯 종류의 기본적 물질이라기 보다는 자연현상을 이루는 다섯가지의 기본적 과정을 나타내려는 사고(思考)의 산물이며, 영원히 순환운동을 행하고 있는 우주간의 다섯 개의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고 볼 수있다.